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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1. 단군신화와 호랑이

호랑이는 우리 민족적 얼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호랑이에 대한 설화도 다양하며, 호랑이 신앙으로까지 발전된 경우도 있다. 특히 호랑이는 단군신화에 곰과 같이 등장하여 태고부터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은 동물이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는 곰처럼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티는 것을 실패하여 동굴을 뛰쳐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하늘. 하느님) -제석(帝釋)을 이름-의 서자(庶子-맏아들을 제외한 둘째 이하의 아들) 환웅(桓雄)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만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신권(神權)을 상징하는 부적과 도장)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 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몸을 삼간 지 21일(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은 요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아마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아침 해가 비치는 곳)로 옮겼다. 그곳을 궁(弓)-혹은 방(方) -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미達)이라 한다. 그는 1천5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천 9백 8세였다.

동물에게 있어서는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최대의 바램이다. 신이나 동물이 모두 사람 세상을 동경하지만 그 위상이 신격과 인격, 동물격의 순서로 분명하게 차별성을 지닌다.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에 터를 잡았다. 동물은 굴속에서 생활한다. 땅 밑에서 땅 위로 올라와야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은 뜻만 품으면 무엇이든 쉽게 가능하다. 그러나 동물은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격이 낮은 동물이 격을 높여 사람 되는 길은 험하고도 어려우므로 신격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환웅에게 빌 수밖에 없다.
환웅은 사람 되는 길을 가르쳐 준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동굴 속에서 백일을 견디라고 한다. 그것은 신이 준 금기이자, 지켜야 할 규범이다. 인격이 되기 위해 동물격이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단군신화에서 그리는 이상 사회는 곡채식을 하는 농본국이다. 농경생활을 위해서는 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곰과 범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짐승을 잡아먹는 육식 또는 육식을 겸하는 초식동물로서 늘 떠돌아다닌다. 수렵민이나 유목민의 생활과 같다. 그래서 범과 곰은 각각 범토템족과 곰토템족을 상징한다고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환웅은 농경생활을 하는 천신족을 상징하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농경생활을 이상으로 삼으며 그 쪽을 향하여 나아가는 단계에 있는 초기농경시대의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군신화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의 벽화를 보면 청동기시대 초기의 유이민 사회가 농경보다는 목축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무씨사당 벽화를 분석한 김재원의 견해인데, 우리 민족이 북쪽에서부터 이 신화를 가지고 도래한 유이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단군신화의 구체적 표현과 문맥을 통해서 볼 때, 그리고 무씨사당이 있는 중국 산동성에서 유이민들이 한반도까지 서서히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까지의 시간적 경과로 볼 때, 반드시 무씨사당의 그림처럼 목축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변화나 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무씨사당의 벽화와 다르게 단군신화에서는 범이 아닌 곰이 단군을 낳는 것으로 이야기가 크게 변화한 것처럼,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산동 지역의 목축생활이 농경생활로 상당히 이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단군신화를 전승하는 주체들은 어느 정도 목축생활을 하는 가운데 농경생활을 지향하며 초기농경생활로 발전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겠다. 다만 토착세력인 범토템족과 곰토템족들은 아직 이런 문화적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곰과 범이 일정한 수련 없이 갑자기 사람이 되어서는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없듯이, 수렵민족이나 유목민족이 생활양식을 일시에 바꾸어 곡채식을 하는 농경민족의 정착생활을 쉽게 감당할 수 없다. 천신족으로 상징되는 환웅이 두 동물을 대상으로 쑥과 마늘을 준 뒤, 이를 먹고 견디게 하고 캄캄한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격적인 생활 또는 농경민의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를 판별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과제는 인간적 삶의 수양이자 삶의 방식을 바꾸는 적응력의 검증 과정이기도 하다.
순전히 육식만 하는 수렵민족들은 식성과 정착생활이 다 맞지 않다. 너무 격차가 커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갈 수밖에 없다. 먹이를 쫓아 날렵하게 움직이는 범에게 한 곳에 눌러앉아서 땅을 파먹고 살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착생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곰은 육식뿐만 아니라 초식도 한다. 겨울이면 굴속에서 오랫동안 칩거도 할 수 있다. 유목민들도 그러하다. 수렵민들과 달리 어느 정도 곡채식을 하며 얼마간 정착생활도 한다. 유목민들은 농경생활을 다소 겸하기도 하므로 농경민으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상당히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곰이 범과 달리 사람으로 변신하고, 곰토템족이 천신족과 함께 농경생활을 하며 정착할 수 있었다.
두 동물이 사람으로 비약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것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식성과 생활방식의 변별성을 드러낸 것이자, 인간 존재의 품격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인간이 되려면 신격이 정해 준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정한 규범은 원초적으로는 자연의 이치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도덕률에 해당된다. 사람들이 신을 섬기고 따르는 것은 자연의 운행과 이치에 순응하며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을 순조롭게 되돌리기 위한 것인 한편, 신의 뜻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고 이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의 뜻이 사람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도덕적 기준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거지를 바르게 틀 지워 주는 것의 하나가 신의 존재이다. 신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신성의 인식이나 지키기 않으면 징벌을 받는다고 여기는 종교적 계율이 인간의 타락을 막아 주고 선한 마음가짐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동물들은 사람과 달리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본능은 먹이활동을 통해서 두드러진다. 사람은 식문화가 있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먹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식생활에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범이 있어 이런 규범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다. 주거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제멋대로 머물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에 정해진 생활방식에 따라 주거생활을 한다.
결국 신의 말씀을 따르는 도덕성을 갖추고 본능을 자제하며 규범을 지킬 줄 아는 문화적 역량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환웅의 말을 따라 금기를 제대로 지킨 곰은 그러한 도덕적, 문화적 자질을 두루 갖추었으므로 인격으로 비약하게 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는 신과 인간, 동물이 더불어 등장한다. 그러면서 삼자 사이에 상호 이동이 가능하다. 신도 사람 세상에 뜻을 두면 인간이 될 수 있다. 동물이라도 정해진 규범을 온전하게 지키는 도덕성과 본능적 욕망을 자제할 줄 아는 문화적 역량을 지니면 인간으로 비약할 수 있다. 정해진 금령을 깨뜨리는 순간 범은 홍익인간의 세상에서 추방되었다. 범처럼 규범을 지키지 않는 이는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곰처럼 묵묵히 규범을 지킨 사람만이 성취를 이루는 세상이 바로 홍익인간의 세상이다.

1.1. 지모신으로서의 곰

'시유일웅일호(時有一熊一虎)'라는 부분을 보면, '일웅일호(一熊一虎)'라 해서 곰과 범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을 강조하여 단군신화는 토템적인 산물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 민족문화 속에서 곰은 토템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혹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곰이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라 해도 토템과는 틀린다. 토템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동물을 의인화시킨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을 중심으로 집단의 전원이 수긍할 수 있는 논리체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씨족 이름과도 관련이 있고 씨족의 제사나 의례 등 이러한 모든 면에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토템이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동물을 의인화했다고 해서 토템이라고 한다면 곤란하다.
만약 단순한 토템의 의미라 해도 곰보다는 오히려 범이 우리 민족문화에 있어서 토템의 대상이 되어 왔다. 범은 산신령 자체가 되기도 하고, 산신령을 모시고 오는 역할을 하기도 하다. 호랑이는 '그 분'이라든가 '영감'이라든가 '대감'이라든가 그러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설이나 민담에서 범은 존귀한 존재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곰은 그렇지 않다. 문제시되는 것은 '웅(熊)'이라는 글자가 한글로 되어있지 않고 한문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가지의 방향으로 뜻을 분석해야 될 것 같다.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웅, 바로 곰이고, 또 한 가지는 언어학적 의미에 있어서의 '웅(熊)', 이렇게 두 갈래로 나누어 분석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생물학적 의미의 곰으로 보자면, 생물학적 의미의 곰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이 곰을 숭배했다. 이 현상이 두드러진 곳을 곰문화대라고 하는데, 고대의 지구 북반부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시베리아 지역에서 곰을 많이 숭배했다고 하다. 이 때 곰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성스러운 동물 혹은 집단을 수호하는 수호령이 되는 것이다. 시베리아 지역에 곰 숭배문화가 있고, 우리 민족이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이 있다면, 우리 민족도 과거에 곰을 숭배한 적이 있다는 논리도 추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베리아에 흑룡강이 있다. 그쪽의 많은 종족들 중 길랴크족과 아이누족 등은 붙잡힌 곰을 자기주거지의 수호신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쪽의 돌칸족은 곰을 '산의 여인'으로 부르고, 보티악족 같은 경우는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곰을 만나면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한다고 한다. 신이 오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그쪽에 있는 샤먼교도들이 대체적으로 곰을 많이 숭배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그쪽 지역과 문화적 연관을 맺고 있다면, 우리도 곰을 신성한 존재로 숭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증거들이 사실은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사람들에게 곰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신의 개념으로 변화가 된다. 아이누족 같은 경우는 지금도 곰을 감이라고 하고, 신을 감이라고 하다.
이제 언어학적인 '곰'의 분석으로 넘어가 보자. 이 사람들은 신을 말할 때 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신을 God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을 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신화는 이동을 한다. 한 지역의 문화집단이 곰을 신으로 숭배했다. 음은 그대로 남아 문화집단의 이동과 같이 이동을 하다. 우리 민족은 시베리아 지역으로부터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석기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들이 계속 이동을 해 오면서 그들의 곰이 갖는 뜻을 가져오는 것이다. 곰이 신이라는 개념을 가져오고 거기에 따라서 음도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곰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 아니라 신인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동을 한 뒤에는 곰의 의미가 바뀌어 간다. 신령스런 동물이 아닌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권의 변천이다.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사람들이 곰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지향하는 문화가 수렵삼림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경문화로 문화의 중심이 바뀐다. 그러면 여기서 숭배해야 될 신적인 존재는 달라져야 하겠다. 신이라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개념규정이다. 농경문화에서는 농경과 관련된 존재가 신이 된다. 이 때의 신은 '지모신(地母神)'이다. 대지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신의 개념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농경문화권에서는 동물이 아니라 땅 자체가 숭배가 된다. 대지가 바로 어머니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지를 숭배하는 속에서 대지의 성격을 대변하는 동물이나 식물이 신적인 상징물이 된다. 주로 식물이다. 왜냐하면 대지를 어머니로 할 때 대지에서 나는 것은 식물, 특히 농경문화에 있어서는 곡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곰이라는 것은 이미 지모신을 대변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곰이 가진 생물학적인 특성이 있다. 이 지모신을 상징하는 동식물을 통틀어 'lunar animal', 즉 달동물이라 한다.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어떤 생명체들이 살았다가 죽는 주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주기가 없으면 농사도 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었다가 깨어나는 동식물을 숭배하는 것이다. lunar animal이라고 부른 이유는, 고대인이 눈으로 볼 때 달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대표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재생(再生)하는 것이 달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특성을 뚜렷이 갖고 있는 동물들이 숭배가 된다. 곰도 동물이다. 그런 식으로 추측해 볼 때 곰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물학적 곰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신 관념으로 쓰이다가 문화권의 이동으로 지모신을 상징하는 말과 동물로 변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의 명칭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곰'이란 말이 신이나 왕을 지칭하기 때문에 국명이나 지명에 '고마'라든가 '개마'라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개마고원 같은 말은 그 자체에 아무런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 그러나 '개마'라는 음을 이와 같이 생각해보면, 바로 신이 사는 지역이라는 뜻이 된다. 개마산이나 태백산 같은 말들은 백두산이 신산이었음을 나타낸다. 곰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토템으로 해석하지만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다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빌어서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고, 환웅은 이들에게 쑥과 마늘 20개를 주고 '이것만을 먹고 100일 동안 빛을 보지 않으면 너희는 인간의 몸을 얻으리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뒤에 단군왕검의 탄생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기서 곰이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 많은 단계가 설정된다. 이것은 곰이 인간으로 질적 전환을 하기에 필요한 관문들을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나와 있는 많은 단계들은 곰이 인간으로 질적 전환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이 단계들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갈 때 치뤄야 하는 의식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바꿈해 가는 통과의례이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결국은 곰은 인간이 된다. 이 때 곰이 변한 인간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 되었지만 신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2. 민간신앙에서의 호랑이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으로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호랑이가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매우 심하여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환난을 일컬어 ‘호환’이라고까지 칭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도 885년(헌강왕 11) 2월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으로까지 뛰어들어 왔다고 하였으니, 호랑이의 피해가 나라 전체에 걸쳐 매우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산중 혹은 인근 마을에서 마주치는 맹수 중 가장 두려워한 존재가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를 야성의 맹수로 인식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호랑이는 그 야성을 순화시키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뛰쳐나와 맹수로 머무르고 만다. 이렇게 인간에게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되어 살아 있는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고 제사까지 지내는 풍속이 오랜 옛날부터 행하여졌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서로 간섭할 수 없다.……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속은 원시부족국가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호랑이숭배사상은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산을 숭배하는 사상은 산속에 사는 숭배의 대상인 호랑이와 연계되어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호랑이를 별칭하여 산군,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심마니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깍듯이 대접하고 있다.
그러나 산신을 모셔놓는 산신당에는 두 개의 산신의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고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있다. 호랑이의 자세도 공격적이거나 서 있기보다는 산신의 옆 또는 앞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도에서의 호랑이 의미를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의 군자 호랑이는 엎드려 있어도 모든 헤아림이 그 속에 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의 신지(神知)를 받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는 사려 깊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소곳이 엎드려 길게 다물고 있는 입 양쪽으로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인 토치(兎齒)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호랑이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는 꼬리는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구름 속까지 닿게 하며 화면 전체에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눈은 왕방울만하게 그려 전체적으로 아래로 내려뜨린 모습이며, 파란색 금박으로 눈동자를 박아 어둠 속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호랑이의 모습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서의 분위기와 함께 친근한 시골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나타냄으로써 확실하게 선과 정의의 편에 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3. 풍수에서의 호랑이

호랑이는 일찍이 풍수설에서도 중요시되어 왔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를 진호(鎭護)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방위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에는 백호(白虎), 남쪽에는 주작(朱雀), 북쪽에는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 4신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풍수지리에서는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다. 즉, 좌청룡, 우백호가 서로 어울려 여러 겹으로 주변을 감싸는 것을 최고의 명당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에는 좌청룡, 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하고 무덤을 보호하는 능호석(陵護石)에는 12지신의 하나로 호랑이상을 새겼으며, 무덤 앞의 석물에도 호랑이상을 조각하였다.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서의 4신은 풍수에서뿐 아니라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도 응용되었다. 12지신은 땅을 지키는 12신장으로 열두 방위에 맞추어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이 12지신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신으로서 그 성격이 변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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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설화에서의 호랑이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첫 번째는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된 설화에서와 같이 신령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로서 표현되는 경우이다. 왕건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폭우를 피하여 동굴 속에서 친구들과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입구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으려 하였다.
    친구들과 의논하여 웃옷을 던진 뒤 호랑이가 물어 올리는 옷의 주인이 희생을 당하기로 하였는데, 호랑이가 왕건의 옷을 물어 올려서 약속대로 굴 밖으로 나가니,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간발의 차이로 살아나게 되었으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김현의 설화에서와 같이 호랑이가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교유한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김현은 한 소녀를 만났다. 이 소녀를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게 되어 소녀의 형제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것을 소녀의 기지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형제호랑이의 살생에 대한 천벌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소녀가 김현의 손에 죽음을 당하여 형제를 살리고 김현에게 공을 돌렸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행위에 감동된 호랑이가 인간을 도와주는 경우, 또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고 그 은혜를 갚는 경우이다.
    이상의 유형이 호랑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랑이와 토끼의 설화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희화적(戱畵的)으로 표현한 유형에 속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되었다. 토끼는 꾀를 내어 먹을 것이 많은 곳을 가르쳐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강변에 가서 꼬리를 물에 담그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점점 물이 얼기 시작하여 꼬리가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더 많은 물고기가 달리기를 기다리다 결국 물이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상의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상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맹수이지만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뭉스러울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및 도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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